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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역사의현장]기사발췌 “그건 통역의 실수로 잘못 전달된 거예요”
  글쓴이 : admin     날짜 : 16-04-04 17:10     조회 : 959     트랙백 주소
http://www.hani.co.kr/arti/politics/diplomacy/737891.html
한겨레 신문 통역관련 기사문 퍼옵니다. 2016.4.4

“그건 통역의 실수로 잘못 전달된 거예요”
등록 :2016-04-01 18:38수정 :2016-04-03 16:34

1998년 11월 말레이시아에서 열린 제6차 아펙 정상회의 개막에 앞서 김대중 대통령이 숙소인 쿠알라룸푸르 힐튼호텔에서 통역을 배석시킨 채 에두아르도 프레이 칠레 대통령과 정삼회담을 하고 있다. 강재훈 선임기자

1998년 11월 말레이시아에서 열린 제6차 아펙 정상회의 개막에 앞서 김대중 대통령이 숙소인 쿠알라룸푸르 힐튼호텔에서 통역을 배석시킨 채 에두아르도 프레이 칠레 대통령과 정삼회담을 하고 있다. 강재훈 선임기자

[토요판] 조세영의 외교클럽
(3) 정상회담과 통역

5·16 군사정변으로 집권한 박정희 국가재건최고회의 의장은 1961년 11월 미국 방문길에 일본을 비공식 방문해 11월12일 이케다 하야토 총리와 면담했다. 이때의 사진을 보면 소파 깊숙이 등을 기대고 앉은 박 의장과 이케다 총리 사이에 통역을 맡은 사람이 보인다. 서울대 법대 교수에서 한일회담 대표단의 일원으로 발탁된 정일영 박사다. 일제 강점기인 1917년에 태어난 박 의장은 일본 육사까지 졸업했으니 원어민 수준의 일본어 실력이었을 텐데 굳이 통역을 배석시킨 것은 외교적 관례 때문이었다.
정상회담에서는 아무리 외국어가 유창해도 통역을 사용하는 것이 원칙이다. 통역이 있으면 일단 발언을 끝내고 통역이 진행되는 동안 다음에 할 말을 생각할 여유가 있고, 혹시 발언 내용이 나중에 문제가 되더라도 ‘그것은 통역의 실수로 제대로 전달되지 않은 것’이라고 하고 넘어갈 수 있는 여지도 생기기 때문이다. 우리 쪽 통역은 대통령이 한국어로 발언한 내용을 상대국 언어로 통역한다. 상대편의 발언은 그쪽의 통역이 한국어로 통역한다. 이 방식을 순차통역이라고 하는데, 정확하게 발언 내용이 전달되는 반면 시간이 많이 걸리는 단점이 있다. 양국 정상이 30분간 회담했다고 하면 굉장히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을 것처럼 느껴지지만, 양측의 통역 시간을 빼고 나면 한쪽에서 발언한 시간은 겨우 7~8분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

램 메모리 빼닮은 통역의 뇌 구조
그리고 실제로 통역을 사용하는 입장이 되어보면 금방 알게 되지만, 한마디 이야기해 놓고 나서 통역이 끝나기를 기다렸다가 다시 말을 이어가는 것은 대화의 맥이 끊기고 상당히 답답하게 느껴진다. 그래서 표정이나 몸짓 등 발언자의 분위기가 잘 전달되면서 자연스러운 대화가 가능하도록 순차통역 대신 동시통역을 선호하는 경우도 있다.
미국은 1985년 11월 제네바에서 레이건 대통령과 소련의 고르바초프 서기장이 정상회담을 할 때 자연스러운 대화를 통해 인간적 신뢰를 쌓도록 하기 위해서 처음으로 정상회담에 동시통역 방식을 도입했다. 그리 크지 않은 사각형 테이블에 양측 대표단이 동시통역 이어폰을 끼고 마주 앉아 있는 모습을 사진에서 확인할 수 있다. 그런데 이때도 한쪽에서 6명씩 배석자가 참석하는 전체회의는 동시통역으로 진행했지만, 양국 정상과 통역 2명으로 참석 범위가 제한된 단독회담은 여전히 순차통역 방식을 사용했다. 동시통역이 자연스런 대화 분위기를 살리는 데는 좋지만 통역의 정확도에서는 순차통역이 훨씬 낫기 때문이다.
정상회담을 할 때 중요하고 민감한 이야기는 단독회담이나 소인수회담에서 나누고 무난한 의제나 실무적으로 이미 합의된 것을 확인하는 데 불과한 내용은 확대회담에서 다룬다. 애초 예정된 단독회담 시간을 크게 넘겨가면서 양국 정상이 긴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는 식의 보도가 자주 나오는 것은 이런 이유 때문이다. 그렇게 되면 확대회담은 대개 시간을 줄여서 간략하게 끝마치게 된다. 예를 들어 1985년 11월의 레이건-고르바초프 단독회담도 애초 15분으로 예정돼 있었으나 결국 64분이나 걸렸다. 이처럼 그 중요성에서 큰 차이가 있기 때문에 확대회담이라면 몰라도 단독회담까지 동시통역 방식으로 진행하는 것은 한계가 있는 것 같다.
정상회담에서는 대통령의 말 한마디 한마디가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토씨 하나도 틀려서는 안 된다는 자세로 빼먹지 않고 통역해야 한다. 한번은 대통령 일본어 통역 후보자를 면접하는 자리에 면접관으로 들어간 일이 있었는데 후보자들이 모두 동시통역 전공자들이라 어학능력은 아주 뛰어났지만 발언 내용을 조금씩 빼먹고 통역한다는 공통점을 발견했다. 그래서 그런 문제점을 지적했더니 동시통역에서는 단어에 집착하지 말라고 배웠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속도가 중요한 동시통역에서 단어 하나하나에 집착하다 보면 대화의 흐름을 쫓아갈 수 없기 때문인 것 같았다. 그래서 나중에 합격자에게 외교무대에서의 회담은 일반회담과는 달라서 정확성이 생명이니 단어 하나도 빼먹어서는 안 된다고 여러 번 강조했던 기억이 난다.
이런 점에서 통역은 어학 실력도 중요하지만 순간적인 기억력과의 싸움이 더 결정적이다. 한마디도 빠뜨리지 않으려면 신경을 곤두세워서 받아 적으며 메모를 해야 하고 메모에 미처 담지 못한 내용은 기억력에 의존하여 최대한 발언 내용을 그대로 재현하듯이 통역해야 한다. 통역할 때 사용하는 기억력은 컴퓨터의 램 메모리와 닮았다.
램 메모리는 순간적으로 데이터를 기억창고에 저장했다가 바로 불러내서 사용하지만 일단 전원을 끄고 나면 기억된 정보가 저장되지 않고 날아가 버린다. 이와 마찬가지로 통역을 하는 순간에는 온 신경을 집중해서 기억했다가 말을 옮기지만, 일단 통역이 끝나고 나면 기억했던 대부분의 내용이 사라져버리고 만다. 순간적으로 기억능력이 잠재되어 있던 최대치까지 올라갔다가 한순간에 다시 원래 수준으로 내려가는 것이다. 통역을 마치고 나서 노트를 보면 키워드 위주로 듬성듬성 잘 알아보기도 힘들게 메모한 내용만 가지고 어떻게 발언 내용을 다 통역해 냈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서 스스로도 놀랄 때가 많았다. 그러다 보니 나중에는 받아 적는 게 너무 힘들어서 차라리 속기라도 배워볼까 하는 생각까지도 했었다.

외국어 유창해도 배석이 원칙
표정·몸짓 살리려 동시통역도
어학실력보다 기억력과의 싸움
발언 내용 재현하듯 옮겨야
30분 회동에 실제 발언은 7~8분
1974년 ‘문세광 사건’ 뒤
박정희, 일본대사 불러 항의
현직 외무부장관이 통역 담당
“이해 못해”, 문서 전달 해프닝
김대중, “소설 읽으면 어휘 늘어”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에 참석한 박근혜 대통령이 2013년 9월6일 오후(현지시각) 국제미디어센터(IMC)에서 열린 한-러시아 정상회담에서 러시아 쪽 통역 담당에게 좀 더 크게 말해달라고 주문하고 있다. 연합뉴스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에 참석한 박근혜 대통령이 2013년 9월6일 오후(현지시각) 국제미디어센터(IMC)에서 열린 한-러시아 정상회담에서 러시아 쪽 통역 담당에게 좀 더 크게 말해달라고 주문하고 있다. 연합뉴스

 노태우 정부까지 의전수석이 맡아
대통령의 통역은 대부분 외교부 소속의 직업 외교관들이 담당한다. 예전에는 대학교수나 외부의 전문가를 필요할 때마다 잠깐 부탁해서 쓰는 경우도 있었다. 하지만 국가의 최고 기밀사항을 다루는 정상회담은 보안 유지를 위해서도 역시 정부에서 일하는 전문 인력이 담당하는 것이 맞다. 지금은 국립외교원의 외교관 후보자 과정을 통해서 외교관을 충원하지만 2013년까지 실시됐던 외무고시에서는 영어가 필수이고 제2외국어를 선택해야 했다. 시험에 합격해서 외교부에 들어온 뒤에는 외국의 대학으로 해외연수를 가는데 이 기회에 본격적으로 어학 실력을 다듬게 된다. 그 후 외교부에서 일을 하면서 어학 실력이 특히 뛰어나다고 인정을 받으면 통역요원으로 발탁되고 그중에서도 뛰어난 사람은 대통령 통역의 기회가 주어진다.
영어의 경우, 지금은 외교부 내부에서 실무급 직원을 발탁하지만 과거에는 달랐다. 노태우 대통령 때까지 영어 통역은 차관급인 청와대 의전수석비서관이 담당했다. 박정희 정부의 조상호(체육부 장관 역임), 최광수(외무부 장관 역임), 전두환 정부의 김병훈, 노태우 정부의 노창희(외무부 차관 역임) 의전수석이 대통령 통역을 맡았다. 김영삼 대통령 시절에는 박진 전 의원이 청와대비서관으로 있으면서 영어 통역을 전담했다. 김대중 대통령 취임 후에는 세종대학교 영문과의 강경화 교수를 외교부에 특채해서 대통령 통역을 맡겼는데, 강 교수는 그 후에도 탄탄한 실력을 발휘해서 외교부의 국제기구국장을 거친 뒤 유엔으로 진출했고 지금은 유엔 인도주의업무조정국의 사무차장보로 활약하고 있다.
제2외국어의 경우에는 동시통역 자격을 갖춘 전문 인력을 특별채용해서 통역요원으로 활용하는 방식이 1990년대부터 정착됐다. 통역요원으로 특채되더라도 정상회담이나 고위급 인사 면담 등 통역을 해야 하는 일이 매일 있는 것은 아니므로 평소에는 일상적인 외교 업무도 맡아서 처리해야 한다. 이들 중에는 통역 이외의 업무에서도 능력을 인정받아 훌륭한 고위외교관으로 활약하는 경우도 있다. 중국어 통역으로 특채된 후에 요코하마 총영사를 거쳐 지금은 칭다오 총영사로 있는 이수존씨가 대표적이다.
옛날에는 외무부 장관이 직접 통역을 한 경우도 있었다. 1974년 8월15일 서울 장충동 국립극장에서 광복절 기념식이 열리던 중 23살의 재일한국인 청년 문세광이 권총으로 박정희 대통령 암살을 시도한 사건이 벌어졌다. 문세광은 일본인 여권을 가지고 입국했고 범행에 사용된 권총은 오사카의 파출소에서 도난당한 일본 경찰의 것이었다. 이 때문에 박 대통령은 8월30일 우시로쿠 도라오 주한 일본대사를 청와대로 직접 불러서 일본 정부의 책임을 지적하고 납득할 만한 조치를 취하라고 요구했는데 이날의 면담에서 김동조 외무부 장관이 직접 통역을 맡았던 것이다.
아무리 고위급이 대통령 통역을 맡던 시절이라고는 하나, 한 나라의 외교수장인 장관이 직접 통역을 했다는 것은 지금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다. 재미있는 것은 미국 측 자료를 보면 일본어가 유창한 김 장관이 통역을 하는 데는 익숙하지 않았던 때문인지 우시로쿠 대사가 대통령의 요구사항이 무엇인지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다고 되어 있다. 나중에 이러한 이야기를 전해들은 박 대통령이 김 장관에게 일본에 대한 요구사항을 문서로 다시 정리해서 우시로쿠 대사에게 전달하라고 지시하는 해프닝도 있었다고 한다.
그 뒤로도 대통령의 일본어 통역은 외교부의 현직 국장급이나, 199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현직 과장(동북아1과장)이 담당했다. 그러다가 1997년에 내가 서기관으로 통역을 맡을 때부터 실무자급으로 내려왔다. 대부분의 선진국에서 통역은 실무급 전문가가 담당하고 과장 이상의 관리직이 통역을 맡는 법은 거의 없다. 외교 실무 업무는 양국 외교부의 과장과 국장 선에서 책임지고 처리하는 것이 보통이다. 그런데 평소에 수시로 얼굴을 맞대고 일하던 처지에 한쪽은 정상회담의 대표단으로 제대로 자리를 잡고 앉아 있는데 다른 한쪽은 통역을 하고 있다면 아무래도 좋은 모양새가 아니다. 그런 점에서는 이제 실무자가 통역을 전담하는 형태가 정착된 것은 다행이라고 하겠다.

신문·TV 보다가도 메모 습관
나는 1997년부터 1999년 초까지 김영삼 대통령과 김대중 대통령의 일본어 통역을 담당했다. 대학에서의 전공은 법학이었으니 정식으로 일본어를 전공한 것은 아니었고 외교부에 들어온 뒤에 일본으로 해외연수를 가서 뒤늦게 일본어를 배웠다. 동시통역 전공자들처럼 전문적인 통역 훈련을 받지 않았는데도 독학으로 대통령 통역까지 했다는 데 조그만 자부심을 가지고 있다. 외교부 초년병 시절에는 언제 통역을 해보라는 지시가 떨어질지 모른다는 생각에 평소에 신문을 읽거나 티브이(TV)를 보다가도 통역에서 써먹을 수 있는 표현이 나오면 그때마다 수첩에 메모를 하는 습관을 길렀다. 일본인과 대화를 나누거나 다른 사람이 통역을 하는 것을 볼 때도 마찬가지였다. 이렇게 늘 통역에 대한 부담감을 느끼며 지냈는데 오히려 그 덕분에 일본어 실력도 늘었던 것 같다.
일제 강점기에 학교 교육을 받은 김영삼, 김대중 두 대통령은 모두 나보다 훨씬 일본어를 잘하는 분들이었다. 그런 대통령들 앞에서 일본어로 통역을 한다는 것은 그야말로 공자 앞에서 문자 쓰는 격이었다. 부족하지만 한마디도 빼먹지 않고 열심히 통역하겠다고 애쓴 덕분이었는지 나의 일본어 실력이 결코 흡족했을 리가 없는데도 두 분 모두 현장에서 통역의 실수를 지적한 적이 한 번도 없었다. 1998년 10월 김대중 대통령이 일본을 국빈 방문했을 때의 일화가 기억에 남는다. 정상회담과 공식만찬을 비롯해서 도쿄에서 예정된 행사가 성공적으로 마무리된 후 동포 리셉션 등 나머지 행사를 위해서 오사카로 떠났다. 공항에서 오사카 시내로 들어가는 자동차 안에서 나는 대통령 내외분의 앞자리 조수석에 앉게 되었다. 김 대통령은 내게 통역하느라 수고했다고 하면서 내용을 빼먹지 않고 잘했는데 일본어 어휘가 조금 부족한 것 같다고 덧붙였다. 그리고 자신은 감옥에 있을 때 일본 소설책을 많이 읽었다면서 어휘를 늘리려면 소설책을 읽는 게 도움이 된다고 조언해 주었다. 내가 뒤늦게 배운 일본어로 하는 통역이 그분들이 보기에는 얼마나 허술했을지 지금 생각해봐도 얼굴이 화끈거린다.



조세영 동서대학교 특임교수 겸 일본연구센터 소장

조세영 동서대학교 특임교수 겸 일본연구센터 소장
조세영 동서대학교 특임교수 겸 일본연구센터 소장
▶조세영 동서대학교 특임교수 겸 일본연구센터 소장. 외교부에서 30년 근무한 뒤 정년보다 8년 일찍 퇴직해서 실천적 문필가를 꿈꾸며 살고 있다. 일본·중국·예멘·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일했고 동북아시아국장을 지냈다. 저서로 <봉인을 떼려 하는가: 미일동맹을 중심으로 본 일본의 헌법개정 문제>와 <한일관계 50년, 갈등과 협력의 발자취>가 있다. 거창한 외교론이 아니라, 외교라는 일을 쉬운 이야기로 풀어보려는 생각에 연재를 시작했다. 매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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